베이스를 코르 다 쥐르에서 프로방스 지방으로 옮겼다. 니스에서 마르세유를 거쳐 엑상프로방스로 넘어갔다가 아비뇽서 남프랑스 일정은 마무리하는 계획이었다.
마르세유- 여기도 어차피 사람사는 곳이야!
욕심같아선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지중해 최대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전국적 시위와 마르세유의 소문난 치안상태는 용감한 나마저도 위축되게 만들었다. 끝까지 고민했던 마르세유… 실체는 어땠을까.
솔직히 마르세유의 불안한 치안상태보다 장기 여행에서 찾아온 내 체력과 멘탈의 한계가 더 무서운 복병이었다. 무엇을 봐도 감흥도 없고 마냥 쉬고 싶고 멈추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을 이겨내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세유는 최대 항구 도시만큼 규모있고 그 이름값을 하는 거대한 빛이 나는 곳이다. 이역만리에서 찾아본 단순한 정보로 이 아름다운 항구 도시를 마냥 위험한 곳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이 정말 후회되는 순간들이었다. 여행자들에게 주고 싶은 조언!! 여행 일정을 잡을 때 제발 떠도는 정보들이나 다녀온 사람들 몇몇의 경험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도시를 규정짓지 않기를 바래본다.
엑상프로방스- 세잔을 만난 것으로 충분해!
Aix-en-Provence 의 Aix는 고대 라틴어로 ‘물’을 의미할 정도로 물이 풍부한 도시며 분수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다양하고 이쁜 분수들이 많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근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의 영혼이 깃든 ‘세잔의 도시’라는 점이다.
폴 세잔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활동하다 잠든 곳이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것인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곳처럼 옛모습 그대로 여행자를 반긴다. 잠시 머물렀던 호텔도 마치 당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옆방에 묶고 있지는 않을까 착각이 될 정도로 엔틱하고 소박하다. 엑상프로방스, 지쳐있던 여행자에게 따뜻한 빛으로 위로를 아끼지 않았던 포근했던 도시였다.
아비뇽- 교황의 도시
아비뇽에 둥지를 틀었다. 아를과 근교여행을 해야했고 무엇보다 2시간 반 정도 TGV를 타고 가면 파리에 빠르게 닿을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비뇽은 지리적 필요에 의해 베이스를 삼았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아비뇽은 질투라도 하듯 도착하자마자 매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게 기대를 했던 곳은 여지없이 실망을 안겨주고 별 생각없던 곳은 의외의 감동을 남겨준다.
아비뇽이 그랬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말로만 듣던 ‘아비뇽 유수’를 교황청을 통해 경험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구시가지, 형태를 그대로 갖춘 중세 가톨릭 건축물 등 깊이있는 풍경을 갖춘 도시가 아비뇽이다. 왜 이곳으로 교황청을 옮겼는지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당시 7명의 교황들은 아비뇽에 있는 동안 충분한 만족을 얻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아를\생레미드 프로방스-고흐가 사랑한 도시
고흐를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 아를이다. 자연풍광과 빛이 아름다운 아를을 찾아온 고흐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탄생시킨다. 반면에 귀를 자르고 고통속에 머문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를은 고흐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이자 가장 아픈 시간을 안겨준 곳이다.
그래서일까. 여행내내 가슴 저편이 아리는 느낌이었다. 특히 생레미드 프로방스의 정신병원에 있는 소박한 그의 침실은 짠하기 까지 했다. 너무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화가, 빛을 사랑했지만 정작 빛을 보지 못하고 떠난 화가, 다행히 후대는 그를 너무도 사랑하기에,그 마음들이 그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까지 충분히 전해지고 있지 않을까.
고흐도 세잔도.. 당시 예술가들이 남프랑스를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빛’ 때문이라고 했다. 남프랑스 여정을 마치고 깨닫는다. 그들의 회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남프랑스만의 무한한 색채감을 만드는 아름다운 빛 덕분이었다는것을…그들은 어쩌면 그 빛을 그대로 모사해 그 수많은 캔버스를 채워나갔던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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