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워프에 흠뻑 빠져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에 겐트에 늦은 저녁이 되서야 도착했다. 당연히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겐트의 매직아워를 놓쳐버렸다. 32일간의 유럽대장정이었지만, 도시별로 빠듯한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스케쥴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포기할 것이 생기고야 만다. 그렇게 겐트와의 첫 만남은 어두운 밤이었다.

겐트의 야경

숙소에 배낭과 캐리어를 거의 던져 놓다시피 하고는 카메라를 들고 구시가로 뛰었다... 어둡다 못해 시커먼 하늘이다. 늦게 도착한 나에게 매섭게 화를 내는 표정이다. 겐트도 브뤼헤나 암스테르담처럼 구도시가 운하로 이뤄져 있다. 밤하늘 아래 수로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중세건물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겐트가 왜 그토록 아름다운 도시로 정평이 나 있는지 이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노을 지는 석양에 겐트를 만났다면 난 아마도 남은 일정을 이곳에 바쳤을 지 모른다.

세계의 걸작 ‘겐트 제단화’

겐트를 찾은 이유는 아름다운 야경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럽 미술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최초의 유화 작품’ <겐트 제단화> 때문이다. 성 바보 대성당에 보관 중인 이 작품은 병풍처럼 화폭의 패널이 펴지는 독특한 형태의 대작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 유명한 미술가였던 얀 반 에이크가 완성했다. 과거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이 작품을 차지하기 위해 치뤘던 수많은 약탈과 수난을 겪은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 세계의 보물로 인정받는 엄청난 제단화다.

운이 너무 좋게도 오전 10시 15분 제단화가 열리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보통은 그림이 모두 열려진 상태로 감상하게 되는데, 다행히 오픈 시간에 맞춰 패널이 하나하나 열리는 감격적인 순간을 목도할 수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 쓰는 게 아닐까. 패널이 열릴 때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제단화 속 인물들과 피사체들... 이렇게 사실적이고 디테일하게 표현된 그림은 내 생전 처음이었다. 한 켠에서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가 제단화의 위대함과 우아함을 표현하는 선율을 선사한다. 기가 막히게 황홀한 순간이었다.

겐트를 만나는 운하투어

운하로 이뤄진 겐트 구시가 곳곳에서는 보트투어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의 배들 중에 본인의 취향에 맞는 보트를 선택해 겐트를 감상해 보는 걸 추천한다.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보트를 기다리던 나는 세찬 비바람의 방해로 운하투어를 할 수는 없었지만, 다시 겐트를 찾는다면 반드시 경험해 보고 싶은 투어다.

짧은 1박 2일을 보냈지만, 겐트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었고, 그 마음을 아는 나는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다. 중세시대 북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다고 하는 겐트는 그 위용을 자랑하듯 멋지고 당당한 풍경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