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절대로 뺄 수 없는 수저. 그런데 이 수저가 9월과 인연이 깊다. 특히 9월 11일에 연관이 깊다는 것.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숟가락 형상과 닮은 9와 젓가락을 닮은 11일을 수저데이로 지정한 것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언제부터?
수저는 숟가락을 뜻하는 '술'과 젓가락을 뜻하는 '저'의 합성어다. '밥한술 뜨세요'의 술이 숟가락을 뜻하는 것. 선조들께서는 젓가락보다 숟가락을 좀 더 중요하게 여겼던 만큼 숟가락이 먼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숟가락은 기원전 6~7세기의 유적으로 보이는 함경북도 나진 초도에서 발견된 뼈로 만든 숟가락이다. 또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숟가락도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저라고도 불린다. 방송에서 언급도 되었다.
그리고 젓가락은 중국에서 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3세기의 서적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아 숟가락보다 이후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한국 최초의 숟가락은 기원전 7세기경 청동기 시대, 젓가락은 기원전 3세기 이후, 숟가락이 젓가락과 동시에 수저로 사용된 것은 기원후 1세기 정도 철기시대인 삼국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수저에도 남자용과 여자용이 있었다?
수저에 진심이었던 우리 조상님은 남자용은 여자용으로 분리를 했다. 남성의 수저가 더 컸고, 주로 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한 것에 반해, 숟가락은 상아, 놋쇠, 유기, 은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네' 하는데, 사실 최고급 숟가락은 금수저가 아닌 은수저였다.
이유는 아마 감이 잡히실 것이다. 바로 은수저로 음식의 독성분을 가릴 수 있었기 때문. 은에 독에 닿으면 검거나 검푸른 빛으로 바뀌기 때문. 그래서 임금도 수라상을 받으면 먼저 숟가락으로 동치미 국물을 한술 떠서 마신 다음, 밥을 뜨고 국과 함께 먹는 것이 법도였다. 그리고 아이의 돌상에 은수저 한 벌과 밥그릇을 놓아 무병장수를 빌기도 했을 정도로 은수저를 최고의 수저로 생각했다.
가장 오래된 젓가락 유물은 어디?
1998년에 출토된 고려시대의 젓가락이 있다. 충북 청주 명암동에서 출토된 제숙공처 젓가락이다. 13세기로 추정되는 명암동 고려 무덤에서 발굴된 이 젓가락은 제공숙이라는 여인의 아들이 죽게 되자 죽은 아들이 저승에서 배를 곯지 말라는 심정을 담아 무덤에 아들이 쓰던 젓가락을 함께 매장한 유물이다. 현재 청주시는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수저만 만드시는 장인분도 계신가?
현재 국내에는 두세 분 정도만이 은수저를 제작하고 있다. 이렇게 장인이 적은 이유는 은수저는 모양이 단조롭지만 만드는 공정이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불에 달궈 녹은 은괴를 녹여 주물에 넣어 막대 모양으로 만든 후 중량을 달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망치로 수백 수천번을 두드려야 한다.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면 숟가락의 입술 부분을 납으로 된 홈에 넣고 볼록한 쇠뭉치를 대고 해머로 내리치며 모양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30~40년 경력의 장인들이 불질을 통해 모양을 다듬어 준 뒤, 압연 기계에 통과시켜 숟가락 모양에 가깝게 바뀌게 된다. 여기에. 다양한 문양을 찍어 주고 금박을 입혀준 뒤 수작업을 거친 뒤 돌가루를 이용해 샌딩으로 마무리하면 은 숟가락의 형태가 완성된다. 여기에 전통문양에 따라 세공된 금을 부착하거나 칠보를 넣고 다시 불에 달궈 깨끗하게 마무리를 한 뒤 연마과정을 거쳐 수세미로 세척하면 비로소 제품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수백 수천번의 두드림을 통해 완성되는 은수저 제작과정을 두드림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은수저 제작기술이 전국기능경기대회라던지 무형문화재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많은 전통 은수저 제작 공방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나라마다 젓가락 모양이 다른 이유는?
음식문화에 따라 젓가락 모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한, 중, 일 세 나라의 경우 가장 큰 차이점은 젓가락에서 나타난다. 젓가락 모양을 비교해 보면 중국은 길고 굵으며, 일본은 길이가 짧고, 한국은 길이가 중국과 일본의 중간정도다. 이것은 세 나라의 음식문화의 차이 때문인데, 커다랗고 둥근 식탁을 사용하는 중국은 멀리 떨어진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당연히 젓가락의 길이가 길어야 했다.
그리고, 기름진 음식들이 많은 중국음식의 특성상 젓가락이 굵고 끝이 뭉툭한 것이 특징이다. 일본과 같은 경우는 연회용 정찬인 가이세키 요리와 혼젠 요리 등이 대표적인데, 가이세키 요리의 경우 우선 국, 생선회, 찜, 구이 등이 먼저 나온 후, 마지막에 밥과 쓰케모노가 나오는데 식단에 따라 5첩, 7첩, 11첩 1인 독상개념의 반상으로 차리기 때문에 음식이 모두 가까이 있으니 젓가락이 굳이 길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이나 국 같은 경우에도 입에 대고 젓가락으로 밀어서 먹거나 마시는 형태로 발전하하게 된다. 또한 일본인들은 생선을 많이 먹기 때문에 바르기 쉽게 길이는 짧지만 끝이 뾰족한 젓가락을 사용하게 된다.
한국의 젓가락의 특징은?
신기한 것이 우리나라는 대륙인 중국과 열도인 일본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반도에 걸맞게 젓가락의 길이와 굵기가 두 나라의 중간정도로 이어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젓가락의 가장 큰 특징은 주로 나무 소재를 이용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금속을 이용해서 수저를 만든다는 것이다. 삼국 시대 왕족들이 은수저를 썼던 문화가 서민들에게 전파되면서 금속재 수저를 만들게 되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한국의 숟가락도 특징적인 부분은?
일본, 중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젓가락 사용을 더 중시하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인들은 숟가락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숟가락으로 국을 떠먹을 뿐 아니라 밥도 숟가락을 퍼서 먹는다. 젓가락은 딱 반찬을 집어먹는데만 사용했던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그릇을 입에 대고 젓가락으로 쌀을 밀어서 먹는 형태가 정착되면서 숟가락의 기능이 점점 퇴화하여 왔지만, 한국은 국과 밥을 떠먹는 기능으로서의 숟가락과 젓가락 문화가 함께 고루고루 발달해 왔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저는 우아하고 격식을 중시하는 한국의 멋을 느낄 수가 있다.
이렇게 수 저만 보더라고 밥상의 조화를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고, 먹는데 진심인 한국사람들의 열정은 조상 대대로 수저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인도 젓가락질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서양인들에게 초밥, 김밥, 라멘. 두부와 같은 아시아음식들이 건강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젓가락에 대한 사랑도 커지는 추세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데 “미래학자 엘빈토플러는 이런 말을 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이 21세기 정보화시대를 지배한다고 말 한 것이다. 이유는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에 있는 30여 개의 관절과 70여 개의 근육이 움직이며 두뇌 활동을 도와준다는 것.
한국이 골프와 양궁, 사격 강국이 되고 반도체, 줄기세포, 복제기술 등 미세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도 젓가락 사용이 밑바탕이 됐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은 서양의 가정집에서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구비하고 헬씨 한 아시아푸드를 만들어 먹는 집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가장 받고 싶은 한국의 기념품 중 하나가 수저세트라 한다. 나 역시 외국에 나갈 때 옻칠 수저세트 같은 선물을 사가지고 가서 드리면 정말 좋아한다.
서양은 나이프와 포크, 동양은 수저와 젓가락이 발달한 이유는?
동양에 수저가 있다면 서양에는 포크가 있다. 포크(fork)라는 말은 ‘갈퀴’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푸르카(furca)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포크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최초의 포크는 기원전 400년경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용했지만 의식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지혜로우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연의 포크인 손가락을 주셨는데, 손가락 대신 금속으로 만든 인공적인 대체품을 사용해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포크의 사용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귀족과 상류계층은 나이프와 포크 같은 개인용 식기를 카데나(cadena)라고 하는 상자에 넣어 디너파티에 지참하면서 일반백성들에게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 입장에서 동양인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을 처음 보고는 꼭 새가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과 같다고 표현을 했다. 반대로 동양인들은 포크로 고기를 써는 모습을 보고 고양이가 발톱으로 쥐를 잡아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쌀이 주식인 동양인들은 마치 새가 좁쌀을 먹는 것처럼 젓가락으로 부리모양을 만들어 식사를 하는 형식으로 발전을 해올 수밖에 없었고, 고기가 주식이었던 서양인들은 고기를 잘게 썰어먹어야 했기 때문에 삼지창처럼 생각 포크로 고기를 고정, 나이프로 썰어먹는 형식으로 발전을 해왔던 것이다.
즉 식단의 차이가 동양의 수저와 서양의 커틀러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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